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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온 와락

“저는 쌍용차 해고자의 아내입니다”


“저는 쌍용차 해고자의 아내입니다”
조은영/쌍용차 가족대책위

여자로 태어나면 딸, 아내, 엄마, 할머니... 이렇게 네 가지의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저는 이 중에서 내 스스로 선택하여 가질 수 있는 이름은 아마도 아내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쌍용자동차 징계해고자 김남섭의 아내 조은영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열다섯 분을 추모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 15시간씩 77회차 1인 시위를 마칠 즈음 전해진 열여섯번째 부음과 연이어 날아든 열일곱번째 부음. 이제 눈물조차 말라붙었나 봅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들여다볼 요량인지 사측과 정부를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우리의 외침이 멈추지 않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부당해고 철회는커녕 관리자와 경영진은 물론 한 때 동료였던 산자들조차 진정성 있는 조문조차 오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로 치자면 작은 규모지만 평택지역에서 가장 큰 회사로 손꼽히던 회사였습니다. 한 때 쌍용자동차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의 자랑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회사를 나 몰라라 외면하고 중국에 팔아넘겼다가 인도에 되팔아 넘기는 데 그 누구보다 앞장선 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 2년이 지나도록 사측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계속되는 거짓말과 부실경영 때문에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열일곱의 생명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남편이었던, 누군가의 아이였던 남겨진 가족들과 차마 눈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도 매일 죽음과 관련된 악몽을 꾸고 일상생활의 순간순간 그것의 충동에 시달리며 힘겨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의 다양한 얼굴에서 멀어지려 할 때마다 들려오는 부고에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하는 마음에 참담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다 죽어나가도 사측의 경영진과 관리인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외면하고 모르쇠 할 건가 소리치고 울부짖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기력한 우리 곁을 자꾸만 우리네 동지들이 떠나갑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대물」의 고현정이 종군기자였던 남편을 잃고 국회 앞에서 “대한민국은 누굴 위한 나라입니까? 국회의원에게 국민은 선거 때 찍어주는 한 표, 두 표... 표 밖에 안되는 겁니까? 우린 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내 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나라 없는 백성도 아니고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죄입니까?” 하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그 대사가 바로 제 심정이라면 과장된 비유라고 하시겠습니까?

경영은 소위 가방끈 길다는 분들에게 맡기고 일만 열심히 했는데 왜 회사가 어려워지면 노동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힘없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닌 것인지, 그래서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한없이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천재적 창의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도, 그의 꿈들로 인해 세상이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의 꿈이 담긴 제품들을 만들어낸 것은 노동자입니다. 작게는 성냥 한 개비, 화장지 한 장은 물론이고 하물며 잘난 분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명품조차도 노동자의 피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 없이 키우진 못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던 내 아이들이 학교의 각종 외부행사에 지원대상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생일에 학교에 간식을 넣어달라던 아홉 살 아들 아이를 못난 엄마는 때렸더랬습니다. 아마도 아이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생채기로 남을 테지요. 아이들을 놀이공원 한번 데려가지 못하는 것보다도, 아이가 원하는 닌텐도를 사주지 못하는 것보다도, 아빠와 함께 주말에 인라인스케이트 한번 타러 갈 시간조차도 내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다섯 가족이 제 시간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된장찌개 보글거리는 뚝배기에 온 집안에 냄새 가득하게 생선을 구워 온 가족이 마주앉아 아이들 밥 수저에 가시 바른 생선살을 얹어주는 소소한 일상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때론 많은 말보다 그저 어깨 한번, 등 한번 툭툭 두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기나긴 싸움에 많이 힘들지만 바로 지금이 내 삶에서 최고의 순간이라 여기면서 서로 손 잡아주고 격려해주면서 힘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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