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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온 와락

[인터뷰] 정혜신 박사 "쌍용차 가족 저항반응은 당연...김진숙도 꼭 치유하고 싶다"

"끔찍한 모멸감...경험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
[인터뷰] 정혜신 박사 "쌍용차 가족 저항반응은 당연...김진숙도 꼭 치유하고 싶다"
홍미리 (gommiri) 기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6개월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집단상담하며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기반에서 시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쌍용차 노동자들을 통해 민주노총이 왜 필요한지 절감했고, 민주노총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심리적 저지선이었는지도 알게 됐다고 전한다. 9월 중순, 정혜신 박사를 만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 또 인간성을 상실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들어봤다.... 기자의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상처 부위를 째고 그 현장으로 들어가 봐라봐야

"상담을 시작하면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내보인 저항반응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한 증상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조차 극단적으로 짓밟히며 심리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잖아요? 그 현장에서 겪은 기억과 상처를 떠올리면 끔찍한 모멸감과 수치심, 통제하기 어려운 분노를 느낄 거 아니겠어요? 그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 저항하는 것이 당연하죠."

어떤 사상이나 신념보다는 의사로서 응급환자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평택으로 달려갔다는 정혜신 박사. 쌍용차 이야기를 하는 내내 시종일관 낮고 차분한 목소리,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표정 모두에서 마음을 다친 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지가 않아요. 가족들은 그것을 잊으면 편할 것 같지만, 결국 고통을 더 가중시키게 돼요. 그 기억을 누르고 없애려고 애쓸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감정이나 기억이 더 또렷해지죠."


정혜신 박사는 상처 부위를 째고 그 현장으로 들어가서 바라보며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담을 통해 그 현장의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ㅆ'만 들어도 악몽을 꾸고 두통이 오기 시작하는 조합원과 그 가족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정혜신 박사는 임무창 조합원 사망 직후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봐주겠다고, 사람을 모으겠다고 나섰다. 처음부터 상담이니 치유니 하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2년간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일상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상처가 있으니 치유하자고 하면 어떻겠어요? 삶이 다 망가진 이들에게 이제 정신까지 병들었으니 상담을 받으라고 하면 그 자체도 외면하고 싶을 거 아니겠어요?"


자원활동가들이 토요일 하루종일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하자 조합원들은 아이들을 데려왔고 아이들 노는 틈을 타 만남을 가졌다. 상담을 원했던 사람들조차 자신의 힘든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했지만 또 한편에는 자신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었다. 그 마음과 정혜신 박사가 연합하며 6개월간 매주 상담치료가 이어졌다.


아이는 데려와도 상담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두렵고 공포스러운 거죠. '그 기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될 거다, 나를 통제 못할 거다'라고 했어요. 또 '나도 더 힘들면 언젠가 가봐야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구요."


정혜신 박사는 상담을 받던 안 받던 이런 기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상담을 받지 않아도 아이들 놀게 하면서 이 공기를 접하고 내가 더 힘들어지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진 것과,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르죠. 없는 것과 있는데 안 가는 것은 다르잖아요. 사람에게 기본적 안전감을 주는 것도 치유적 역할을 합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 건립에 정혜신 박사가 정성을 쏟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평택을 시작으로 '평택 와락', '부산영도 와락', '유성 와락' 등 전국 지역에 심리치유센터가 생겨 우리 사회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찾아가 치유받게 되기를 꿈꾼다. '와락'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치유바이러스가 번져나가기를 그는 희망한다.


정혜신 박사는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꼭 치유하고 싶다

올 여름 매주 토요일마다 온몸이 땀에 젖어가며 쌍용차 조합원 아이들과 놀아준 자원활동가들, 과거 국가공권력에 의해 고통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따뜻하게 안아 위로해 준 고문피해자들 모임 '진실의힘' 등 모두가 치유자였다고 정 박사는 말한다.


"심리치유센터를 세운다고 하니까 그분들 모두 응원하며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시스템과 터전과 흐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치유의 핵심이에요. 여러 사람들 안에 있는 치유적 요소들을 자극하고 본인들도 인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죠. 그래야만 혼자만의 치유가 아닌 입체적 치유가 이뤄질 수 있어요."


정혜신 박사는 아직 수감 중이지만 와락을 통해 상담받기를 원하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도, 김진숙 지도위원도 꼭 치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처럼 주목받지 못하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는 수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그는 치유매커니즘을 퍼뜨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정혜신 박사는 마인드프리즘에서 대기업 경영자와 임원들을 상대로 1:1 심리분석을 진행한다. 그가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치유상담을 진행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기업 경영자나 임원 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와락' 건립 등 그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익명으로 성금을 내는 이들도 있다.


"그분들이 하는 말이 정리해고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대요. 사측과 노측 그런 집단 간의 문제로만 봤다는 거죠. 이제 사람이라는 것이 와 닿은 거예요. 30년간 대기업에서 일했다는 어떤 분은 돈을 내면서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고 했어요. 본인이 일하며 인지하지 못했던 것, 자기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일들이 떠올랐을 거예요."


정혜신 박사가 계속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이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논쟁이 될 것이며 그 논쟁은 끝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것을 조금 미뤄놓고 사람을 보자고 정혜신 박사는 말한다.

"정리해고자와 그 뒤의 가족들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개별성을 실감해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주춤주춤할 거라고 생각해요. 반면 집단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대결구도로 가는 거죠.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자극해야 한다고 봐요."


정혜신 박사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 나와서 김주익 열사가 누군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잖아요. 전 그 진짜를 접했다면 달랐을 거라고 봐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하는 것도 아직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접할 수 없게 하는 여러 가지 방해구조가 있는 거죠."


정 박사가 희망버스 기획단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 기획단의 누군가가 했던 말, 그것이 바로 치유의 핵심이라고 그는 말한다.

정혜신 박사는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집단 상담치료를 진행했고, 지금은 치유상담센터 '와락'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쌍용차 조합원들이 그랬다는 거예요.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구요. 저는 그렇다면 제 마음이 제대로 잘 전달된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받아들여지고 존중받고 주목받는 게 치유의 핵심이에요. 그런 가치를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살린다고 저는 믿어요."


정 박사는 인터뷰 내내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어요. 살다보면 마음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것 인양 행동할 때가 많아요. 부모자식 간, 부부끼리,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도 마찬가지죠.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기반에서 시작하는 정책이 꼭 필요합니다."


그는 또 본래 인간은 아주 순수하고 완전하고 건강한 균형감각과 굉장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했다. 살아가는 동안 온전한 것을 훼손해놓고, 본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 삶인 것 같다고 토로한다.


"모든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예요. 그것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거죠."

이 말은 곧 그토록 소중한 존재인 사람을 우리 사회가 너무나 부당하게 함부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항변이리라.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시면 좋겠어요. 저도 심리 치유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민주노총이 왜 필요한지 너무 많이 절감했구요, 민주노총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심리적 저지선이었는지도 알게 됐어요."